버블 세대가 꿈꾸는 제조업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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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에 일본 TBS에서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시타마치 로켓(下町ロケット)」. 2013년 시청률 40%를 넘으며 일본 사회 전체에 커다란 붐을 일으켰던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의 원작자 ‘이케이도 쥰(池井戸潤)’의 소설을 「한자와 나오키」의 스탭들이 또 다시 드라마화한 작품입니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원동기나 보트 등에 들어가는 소형 엔진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기업 ‘츠쿠다 제작소’는 OEM으로 엔진을 납품하던 대기업 나카시마 공업의 갑작스러운 특허 침해 소송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습니다. 은행의 융자가 끊기고, 거래처들과의 관계도 악화되어 도산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이때 나카시마 공업은 츠쿠다 제작소에게 M&A를 제안해오고, 사내의 의견은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츠쿠다 제작소는 유능한 특허 전문 변호사 카미야 슈이치의 도움을 받아 나카시마에게 역소송으로 맞대응하게 되고, 고전 끝에 승리해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등록한 연료 밸브의 특허가 우연히도 일본 최대의 기업인 ‘제국 중공업’의 로켓 개발 계획의 핵심 부품보다 먼저 출원되고, 이것을 계기로 츠쿠다 제작소는 순 일본산 로켓의 제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연료 밸브를 제공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권선징악적이면서, 조금은 평면적인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일본 최고 권위를 지닌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이 이야기 속에 지금 현재의 일본이라는 나라, 산업 국가 일본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타마치 로켓이라는 이야기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의 제목과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이케이도 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시타마치(下町)’는 영어의 down town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자면 ‘구시가지’ 정도인데요. 어디까지나 번역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일본인에게는 이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에도시대에는 에도(지금의 도쿄)의 높은 지대를 야마노테(山の手)라고 불렀는데, 이런 곳에는 우선적으로 거주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지대가 낮은 지역을 시타마치(下町)라고 불렀는데 이런 곳은 대부분이 습지로 작은 개천이 흐르는 곳이 많았습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런 곳을 매립해서 도시 개발을 전개했고, 뒤늦게 형성된 시타마치 지역에서 서민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도쿄의 상업 지역을 대표하는 닛뽄바시, 쿄바시, 칸다, 아사쿠사, 혼죠, 후카가와 등이 바로 그러한 시타마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시타마치는 서민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한 상업지구와 주거지가 혼재되어 있는 지역을 의미하는 단어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타마치에는 상업 시설과 함께 그러한 상점들에 물건을 대는 공방들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가내수공업으로 공업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들을 일본어로 마치코바(町工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대로변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의 인적이 뜸한 골목 안쪽에는 마치코바들이 구석 구석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시타마치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도쿄의 아사쿠사나 카메다 같은 지역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시타마치 로켓의 츠쿠다 제작소도 바로 일본의 시타마치를 대표하는 카메다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변두리 로켓’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변두리는 그런 곳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에 일본 제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마치코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대기업들이 원하는 부품들을 싼 가격에 공급하여 일본 제조업의 성장을 견인한 주역들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시타마치는 일본의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럼 로켓은 왜 등장하는 것일까?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로켓은 제조업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최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래 제국 중공업은 이 로켓을 자신들의 기술만으로 쏘아 올리려고 했습니다. 즉, 대기업의 힘만으로 쏘아 올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만의 힘으로는 좀처럼 로켓의 발사를 성공시키지 못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츠쿠다 제작소가 만들어낸 밸브 시스템이고, 제국 중공업은 츠쿠다 제작소의 밸브 시스템을 도입하고서야 비로서 로켓 발사에 성공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제조업은 중소기업 없이 대기업의 힘만으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으며,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연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시타마치 로켓」이라는 작품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인 츠쿠다 제작소의 사장 츠쿠다 코헤이가 본래는 JAXA의 주임 연구원이었다는 점입니다. 츠쿠다는 JAXA에서 ‘세이렌’이라는 이름의 로켓을 개발했지만 발사 직후에 연료계의 이상으로 공중에서 폭발해 버립니다. 그는 이 실패의 책임을 지고 JAXA를 떠나게 되고, 아버지가 경영하던 중소기업인 츠쿠다 제작소를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츠쿠다 코헤이는 JAXA에서의 로켓 발사 실패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연료 공급을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밸브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이렌의 실패는 로켓 개발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경험이자 데이터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츠쿠다 코헤이는 책임을 추궁당해 연구소를 떠나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작가인 이케이도 쥰은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일본의 조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마 츠쿠다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높게 사줬다면 소설 속의 일본은 몇년 더 빨리 국산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업과 조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작가의 출신 배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원작자인 이케이도 쥰은 버블의 절정기였던 1988년에 미츠비시 은행에 입사하여 7년 동안 은행원으로 일했던 인물입니다. 은행과 관련된 소설을 많이 쓰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고, 「한자와 나오키」에는 자신의 은행 직원 시절의 경험들이 많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1995년에 은행을 퇴사한 뒤에 비즈니스 서적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주로 은행이나 투자와 관련된 비즈니스 서적을 집필하면서 인기있는 비즈니스서 작가로서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가를 꿈꾸던 그는 1998년에 은행의 부정한 내막을 다룬 소설 「끝없는 바닥(果つる底なき)」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합니다. 이후로는 연이은 히트작을 발표하고, 「시타마치 로켓」이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가 드라마화 되어서 4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시타마치 로켓」은 작가인 이케이도 쥰의 세대들이 지닌 버블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베어 있습니다. 아마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지만, 일본인들은 굉장히 쉽게 사과를 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쉽게 자기를 낮춰서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경향은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관념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종전 후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전쟁에 대한 반성 기조가 대표적이고, 버블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런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기고문들을 보면 마치 매일같이 반성문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버블은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되고 있습니다. 「시타마치 로켓」은 버블에 대한 그런 반성 기조에 강한 반발감을 드러내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정말 냉정하게 평가해서, 일본이 국산 기술로 로켓을 쏘아 올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평화헌법 9조 때문에 전쟁 수행이 불가능해서 미사일도 못 만드는데 말이죠. 합리성을 더 중시하는 요즘 분위기에서는 정부도 아닌 기업이 주도해서 로켓을 만든다는 것은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블 시절에는 당장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로켓 발사도 민간 기업에서 돈을 쏟아 부어서 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로켓으로는 돈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부산물들이 결과적으로 회사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거든요. 지금까지 일본이 버티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은 버블 시절의 무모한 투자들의 부산물로 얻어낸 기술과 사람들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버블 시절처럼 무모한 그 무언가를 하길 바라는 바람을 하나의 상징물로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순 국산 로켓입니다. 이제는 돌아오기 힘든 제조업의 유토피아를 다시 찾고 싶어하는 바람이라고 할까요? 그런 일본이 투영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요?

상하 김
TOKYO BRANCH Inc. Chief Executive Off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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